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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팜므파탈’이자 한국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린 그녀의 발자취

한국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렸던 배우 김지미 씨가 향년 85세로 별세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녀의 별세 소식은 영화계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큰 충격과 아쉬움을 안기고 있습니다. 수많은 작품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김지미 배우의 인생과 작품 세계, 그리고 그녀가 남긴 유산을 돌아봅니다.

1960~70년대 스크린을 장악한 여배우
김지미는 단순한 스타를 넘어, 대한민국 영화 역사에서 상징적 인물이었습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수많은 흥행작과 문제작의 중심에 있었고, 특히 강렬한 여성 캐릭터로 시대를 선도했습니다.
‘원조 팜므파탈’,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수식어는 그녀의 명성과 영향력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대표작으로 본 그녀의 연기 인생
김지미 배우는 총 7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춘향전’, ‘홍콩 1967’, ‘망부석’,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이 있습니다. 때로는 순수한 이미지로, 또 어떤 작품에서는 도발적인 캐릭터로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줬죠.
대표작품 개봉년도 역할 비중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 1961 | 주연 |
| 망부석 | 1963 | 주연 |
| 춘향전 | 1961 | 주연 |
| 홍콩 1967 | 1967 | 주연 |

수상과 기록, 그녀는 기록 그 자체
김지미는 대종상 영화제,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 국내 유수의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차례 수상하며 ‘기록의 아이콘’으로 불렸습니다.
당시 여배우로서는 드물게 제작에도 참여하며 한국 영화 산업의 흐름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영화계를 넘어 사회적 영향력도 컸던 인물
당대 최고 스타였던 그녀는 영화계를 넘어 사회적 인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패션, 여성 이미지, 연예계 여성의 위상을 모두 끌어올린 주역이었죠.
실제 그녀의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의상은 시대를 대표하는 트렌드로 자리잡았고, 수많은 여성들이 그녀를 따라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비교된 이유
김지미는 단순히 외모 때문이 아니라, 작품 속 강렬한 연기와 대중의 관심, 스포트라이트 속 삶의 굴곡까지 미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비견됐습니다. 그녀 또한 화려한 결혼과 이혼, 사업 실패와 재기 등의 굴곡을 겪으며 더욱 입체적인 인물로 평가받았습니다.

생의 마지막까지 ‘영화배우’로 남고 싶었던 사람
은퇴 후에도 김지미는 몇 차례 복귀를 시도했으며, 영화제 참석과 후배 배우들을 위한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최근 건강 악화로 투병 중이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그녀는 끝까지 "나는 배우다"라는 정체성을 지켰습니다.

김지미의 별세를 바라보는 영화계의 추모
배우들과 감독들, 영화계 관계자들은 그녀의 별세 소식에 "한국 영화계의 큰 별이 졌다"며 애도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향후 조문 및 장례 일정은 유족 측 뜻에 따라 조용히 치러질 예정입니다.

그녀를 기억하는 방식
김지미 배우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수많은 작품과 영향력은 앞으로도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영화를 사랑했던, 영화가 그녀의 전부였던 한 여성의 삶을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